기업상조용품 중 수저케이스는 상품 구성에 빠질 수 없는 존재이죠.


기업의 로고가 인쇄된 수저케이스는 종이컵이나 접시류와 다르게 한번 접어서 식탁위에 놓게되면 어지간해서는 교체를 하지 않죠.


그말인즉슨,


장례를 치르는 3일동안 기업의 로고가 문상객들에게 노출된다는 점이죠.


기업상조용품은 기업 또는 관공서의 로고를 인쇄하여 문상객들에게 보여줌으로 인해서 임직원의 애사심이 높아짐은 물론이고,


적은 비용으로도 장례식장을 찾는 분들에게도 간접적인 홍보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상조회사의 경우에는 수저케이스에 회사 로고 이외에 상품안내 관련된 인쇄까지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조회사의 경우에는 팀장들이 장례발생후 두시간 이내에 장례식장에 도착을 하게됩니다. 만약 해당 상조를 이용한다고 할 경우에는 지체없이 가지고온 용품을 풀어놓게 되죠.


일회용 수저케이스 접는방법





일회용 수저케이스를 보면 1번부터 4번까지의 번호가 있습니다.


이것을 순서대로 접으면 됩니다.


먼저 수저케이스를 거꾸로 세운 후, 1번과 2번을 안쪽으로 접어 넣습니다.




1번과 2번에 보면 중간 홈이 파여 있는데요, 이 두 홈이 마주보게 해서 안쪽으로 밀어넣으면 됩니다.


이건 나중에 3번, 4번과 같이 끼워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완전히 밀어넣으면 위 사진과 같이 되겠죠?




자, 이제 3번과 4번을 1번, 2번의 중간 홈에 끼워 넣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씩 끼워넣어도 되고, 한꺼번에 밀어넣어도 되요~ 어렵지 않아요~




다 접은 수저케이스를 뒤집어 보면 1,2번과 3,4번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때는 이렇게 뒤집어 놓은 상태에서 아래로 눌러주면 완성이 됩니다.




다 접은 일회용 수저케이스를 보면 네면에 모두 기업의 로고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기업 또는 관공서의 요청에 따라 1도인쇄, 2도인쇄가 가능하며 인쇄 후 코팅이 더 입혀 오물이 묻거나해도 쉽게 닦아낼수있습니다.


기업상조용품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중에 하나인 일회용 수저케이스!!



부고소식을 접한 후 한달음에 달려간 장례식장.


하지만 정작 장례식장의 예절에 대해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장례식장의 예절과 절하는 법, 장례식장 복장, 문상방법을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장례식장 예절 - 복장편




옛날 장례식장복장은 평상복이 한복인지라 화려하지 않은 흰색 한복을 입고 가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하지만 서양문화가 유입이 되면서 양복을 입는 것이 예를 갖춘다는 인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무채색계통의 양복을 입는게 장례식장 복장으로는 가장 좋습니다.


또한 화려한 악세서리나 향수등은 자제하여주시고, 혹시 모자나 외투를 걸치셨을 경우에는 절하기 전 먼저 벗어놓는것이 좋습니다.


남자의 경우에는 무채색의 양복을 갖춰입으시되,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무채색계열의 어두운 옷이면 괜찮습니다.


여자분들은 검정양복을 가지고 계신분이 별로 없으시기도 한데요, 이럴때에는 검정계열의 화려한 옷보다는 차라리 덜 화려하더라도 무채색계열의 다른 옷을 입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여자의 경우 구두를 신는 분들은 적어도 스타킹은 착용을 해주시는게 예의입니다.


장례식장 예절 - 절하는 법



장례식장에서 절하기 이전에 분향이나 헌화를 먼저 한 후, 절을 하게 됩니다.


분향을 할 때는 오른손으로 향을 집어 촛불위에서 불을 붙인 후, 왼손으로 가볍게 흔들어 끄고, 향을 든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친 상태에서 향로에 놓습니다.


헌화는 오른손으로 꽃 줄기를 잡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친 후, 꽃봉오리가 영전을 향하도록 올려놓으면 됩니다.


일반적인 유교의 경우에는 분향 후 재배(절)을 하고, 기독교는 헌화 후 기도를 합니다.


절하는 방법은 남자와 여자가 조금 다른데요,


일반적으로 알고계신 큰절을 두번 올리고, 반절을 한번 해주시면 됩니다. 다만, 남자의 경우에는 오른손이 위로, 여자의 경우에는 왼손이 위로 가면 됩니다.


절하실 때에는 먼저 두 손을 모은 상태에서 무릎을 꿇고, 그 후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절을 하면 됩니다.



신위를 향하여 두배 반 절을 하고 난 이후에는 몸을 돌려 상주를 바라보고, 맞절을 하면 됩니다.


많은 분들이 맞절을 한 이후에 상주와 얘기를 나누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간단하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긴 얘기는 추후 상주가 문상객의 식사자리로 왔을 때 나누시는 것이 좋습니다.


맞절까지 한 다음에는 바로 몸을 돌려 나오시는 것이 아니라 두세걸음정도 뒷걸음질로 물러난 후에 몸을 돌리는게 고인에 대한 예의입니다.


장례식장예절 - 문상예절



가까운 친인척이나 지인의 부고소식을 듣게되면 가급적 빠른 시간에 장례를 도와주는 것이 도리이나 그럴 여건이 되지 않거나, 장례에 대한 내용을 잘 모를 경우에는 


2일차에 방문하여 문상하여도 무방합니다.


다만, 친인척의 경우에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장례준비를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 문상객의 경우에는 조문을 한 이후, 장례도우미분들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은 후 식사나 주류를 드시는데 이전에 가정집에서 장례를 치를때는 2박 3일간 손님이 계속 시끌벅적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되었지만 최근에는 12시에서 1시쯤에 상주들도 쉬어야 하므로 자리를 비켜주는것이 예의입니다.


또한 몇몇 문상객들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카드나 화투를 치는 분들이 있는데, 만약 빈소에 문상객들이 많을 경우에는 이렇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민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실수가 흡연입니다.


장례식장은 법적으로 금연건물로 지정되어 있어 실내에서의 흡연이 불가능하지만 일부 고지식한 분들은 빈소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흡연을 하시곤 합니다.


이건 고인은 물론, 상주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고인을 찾아온 다른 문상객들에게도 민폐를 끼치는 행위이니 반드시 지정된 흡연장소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관혼상제.

성인식(관례), 결혼식(혼례), 장례(상례), 제사(제례)를 일컫는 4례인 관혼상제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관혼상제란?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성인이 되어 갓을 쓰는 성인식인 관례와,


결혼식을 올리는 혼례,


장례절차를 의미하는 상례,


제사를 지내는 제례를 말합니다.




이것은 한 개인이 일생을 거치면서 치르는 통과의례로, 가정을 중심으로 일련의 의식을 행하기 때문에 가정의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대적인 유교적 관습등이 민중에 뿌리내린 조선시대에는 국가에 의해 관혼상제(가정의례)가 강력하게 추진되었으나, 신분에 따라서 행하는 방식의 차등을 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후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관혼상제를 실제로 행하는 것이 억압되었죠. 이시기에 관례는 거의 없어지다 시피 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성인식의 개념은 서양에서 넘어온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억압되던 것이 광복후에도 이어지게 되는데, 유교사상을 기본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무너지게 되면서 상례나 제례보다는 혼례등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것들이 더 중요시되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가정의례지만 이것을 실제 가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습니다.


전문예식장, 전문장례식장과 관련 직업이 생겨나면서 가정이 아닌 전문시설에서 의례를 진행하는게 보편화되고, 이것들이 점점 사치와 본인의 신분을 내세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가정에서 행하는 관혼상제는 제례만이 남아있고, 이마저도 기독교등을 믿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 관례





관례는 머리에 갓을 써서 어른이 되는 의식입니다.


남자나이 20살이 되면 관례를 행하고, 여자나이 15살이 되면 비녀를 꽂았습니다.


관례는 15세 ~ 20세때 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부모가 기년이상의 상복이 없어야 행할수 있습니다. 또한, 관례를 받을 사람이 <효경>, <논어>에 능통하고 살아가며 필요한 예의를 알게 된 이후에 행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관례를 혼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요, 미혼이더라도 관례를 마치게 되면 완전한 성인이 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남자는 관례를, 여자는 머리에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한 뒤 사회적인 지위가 보장되었으며, 관례를 하지 못한 자는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자신보다 먼저 관례를 치른 자와의 언사에 있어서도 하대를 받았습니다.


▶ 혼례


혼인은 사람의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원전인 고조선때에도 혼인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혼인은 예전부터 중요한 일로 생각되었죠.


조선대에 이르러 혼례는 남자와 여자 당사자들기리의 결합이 아닌 두 집안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부여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도 이러한 인식은 남아있습니다. 


또한 서구권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혼례 자체를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서양식 혼례를 치는것이 대중화가 되었고, 이전에 행해지던 혼례는 전통혼례라 하여 특별하게 치르는 것으로 인식되어지고 있습니다.


▶ 상례



상례는 한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모시는 절차로써 관혼상제 4례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각기 행하는 방식만 다를 뿐, 상례를 중요하게 행하고 있습니다.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불교와 유교의 양식이 혼합된 상례가 행해졌으나, 중국으로부터 주자가례가 유입되고, 조선대에는 배불숭유 정책이 펼쳐진 탓에 지금은 불교의식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유교를 기반으로 한 상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주자가례는 중국에서 건너와서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숙종때 사례편람이 나오면서 조금 더 한국에 맞는 상례가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방마다 상례의 풍습에 조금씩 차이가 발생하였고, 이후 기독교가 유입이 되면서 기존 유교식 상례는 간소화하고 기독교식으로 상례를 치르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 제례


제례는 기본적으로 조상신에게 살아있는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제례의 시초는 부여에서 영고라 하여 12월에 하늘에 제사하였고, 고구려에서는 동맹이라 하여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동예는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 무천이 있었습니다. 마한에는 소도라는 신역에 솟대를 세우고 북과 방울을 달아 천군이 신을 제사지냈고, 신라에서는 남해왕때에 이르러 혁거세묘를 세우고 혜공왕때에 5묘의 제도를 정했으며, 산천도 제사지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제도를 본떠 원구, 방택, 사직, 마조단, 사한단 등을 설치하고 예를 갖추어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도 원구와 방택만을 제외한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일반 사가에서 행해졌던 제례는 고려때에는 대부이상은 증조까지 3대, 정6품 이상은 조부까지, 그 이하는 부모만을 가묘를 세워 제사지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가 더 팽창하여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고조까지 4대를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일부 씨족집안을 제외하고는 조상제사 이외의 것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 수연례


수연례는 관혼상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어른의 생신에 아랫사람들이 상을 차리고 술을 올리며 오래 사시기를 바라는 의식입니다.


수연례의 종류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육순(六旬):60세 때의 생신이다. 육순이란 열(旬)이 여섯(六)이라는 말이고, 육십갑자(干支六甲)를 모두 누리는 마지막 나이이다.
2) 회갑·환갑(回甲·還甲):61세 때의 생신이다. 60갑자를 다 지내고 다시 낳은 해의 간지가 돌아왔다는 의미이다.
3) 진갑(陳·進甲):다시 60갑자가 펼쳐져 진행한다는 의미이다. 62세 때의 생신이다.
4) 미수(美壽):66세 때의 생신이다. 옛날에는 66세의 미수를 별로 의식하지 않았으나 77세(희수喜壽)·88세(미수米壽)·99세(백수白壽)와 같이 같은 숫자가 겹치는 생신을 이름 붙였으면서 66세를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현대 직장의 거개가 만 65세를 정년으로 하기 때문에 66세는 모든 사회활동이 성취되어 은퇴하는 나이이면서도 아직은 여력이 있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나이이므로 '美壽'라 하고, 또 '美'자는 六十六을 뒤집어 쓰고 바로 쓴 자이어서 그렇게 이름붙였다.
5) 희수·칠순(稀壽·七旬):70세 때의 생신이다. 옛글에 "사람이 70세까지 살기는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는 데서 희수란 말이 생겼는데, 그런 뜻에서 희수라 한다면 "어른이 너무 오래 살았다"는 의미가 되어 자손으로서는 죄송한 표현이다. 열이 일곱이라는 뜻인'칠순(七旬)'이 더 좋다.
6) 희수(喜壽):77세 때의 생신이다. '喜'자를 초서로 쓰면 七十七이 되는 데서 유래되었다.
7) 팔순(八旬):80세 때의 생신이다. 열이 열덟이라는 말이다.
8) 미수(米壽):88세 때의 생신이다. '米'자가 八十八을 뒤집고 바르게 쓴 데서 유래되었다.
9) 졸수·구순(卒壽·九旬):90세 때의 생신이다. '卒'자를 초서로 쓰면 九十이라 쓰여지는 데서 유래되어 졸수라 하는데, '졸(卒)'이란 끝나다·마치다의 뜻이므로 그만 살라는 의미가 되어 자손으로서는 입에 담을 수 없다. 오히려 열이 아홉이라는'구순(九旬)'이 좋다.
10) 백수(白壽):99세 때의 생신이다. '白'자가 '百'자에서 '一(하나)'를 뺀 글자이기 때문에 99로 의제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수연례의 상차림과 절차를 따져서 진행되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잔치의 형식으로 일가친척들을 초대하여 어른의 장수를 다같이 축하해주며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관혼상제는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우리의 풍습입니다.


비록 관례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지만 혼례, 상례, 제례는 지금도 그 모습과 형식만 다를 뿐 여전히 행해지고 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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